
15년간의
태교
후
탄생한
은상
By:
유
영 봉
천사는
우리
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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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의
막내 은상이는 우리가정에
천사이다.
21개월
된 사내아이
40세가 갓 넘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늦동이 고1의
누나 중2의 형을
둔 우리집 막내 은상이는
15년간의 태교를
통하여 태어난 특별한
아이다.
워낙
늦게 가진 막내인지라
누나하고 길을 가면
아들 낳기 위하여
늦동이 나셨군요?
형하고
길을 가면 집안 재정
형편이 좋아 늦동이
하나 더 보셨나 보죠? 우리
부부가 은상이를
예뻐하면 손이 귀한집
자식인가 봐요? 이런
말을 들을때마다 우리
은상이가 대견스럽고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어쩔수 없다. 이
세상에서 자기 새끼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97. 7. 31
13:45 은상이가 이
세상에 어느 조그만
산부인과에서 부모의
얼굴도 모른채 너무도
슬프게 그렇지만
위대한 탄생의
첫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97. 11. 26
21:00 우리 은상이는 15년
동안의 태교를 하고
기도로 준비하고 있는
우리 부부의
막내아들로 새롭게
태어났다.
97. 12. 17 은상이가
우리 호적에 당당하게
등록한 위대한 날이다.
국내 입양을
통하여 은상이는 우리
집의 둘째아들이
되었고 우리 부부는 세
아이의 부모가 된
것이다.
은상(恩相) 이란
그이름은
은상이란
그 이름은 우리가족 넷이서
은상이가 우리 집에 온
날 다락방에 앉아 회의를
한 결과 지어낸 이름이다.
이름 끝에 돌림자인
상자는 우리 가족의
일체감을 가질 수
있도록 상(相)자로
정하고
여러
이름을 지어내었다. 사촌들의
이름 준상. 재상.
일상. 현상.
택상등 중복되는
이름을 제외하고
수상이하고 은상이라는
이름으로 압축되었으며
최종협의
결과 은상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은상이라는
이름은 이 세상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은혜와
사랑을 주고 받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라는
우리 가족의 한마음이고
은상이의 예쁘고
멋있는 외모와 딱 어울린다는
생각으로 기쁘고 밤
깊은 줄 모르고 지어낸
역사적인 이름이다.
은상이가 처음
오던 날 우리부부의
심정은
은상이가
우리집에 처음 오던 날
우리 부부의 심정은 이
글로는 표현하기가 참
힘든 것 같다. 한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책임감으로 가슴 깊숙히
내리 누르는 중량감
그리고 기대감과 기쁨의
희열로 벅찬 가슴을
억누룰 수 없는 교차된
감정으로 밤새 한잠도
자지 못했다. 40년
인생을 살면서 아니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우리 부부가 산 15년
동안 한번도 가져 보지
못했던 복잡 미묘한 그
기분은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낳은 공보다는
기른 공이 크다는
아버님의 말씀은
어렸을적부터
아버지로부터 많이 들어온
낳은 공보다는 기른
공이 크다는 말씀을
분명 기억하고 있다. 은상이를
입양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대전에 내려가서
저희부부가 입양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고 입양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말씀을
드렸더니 기른 공이 큰
것이며 좋은 일이라고
말씀하셔서 너무도 감사하고
용기를 얻었으며
아내가 역시 우리
시아버님은 훌륭 하시다고
말을 해 나는 남편의
위상을 높일 수 있었다.
은상이가
우리 집에 온 후
할아버지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기 위하여
대전으로 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왔다.
아버지께서
입양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잠도 못주무시고
걱정을 하시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상경하는
자동차안에서
아버님께 분명하게
말씀드렸다.
아버님께서
저희 6남매를
키우고 인생을 정말
최선을 다하여 사셨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바르게 사셨지만 8순
이 다되신 지금에 와서
인생을 참 헛되게 살았다고
말씀 하십니다. 데려다
키운 자식 성장하여
말썽부리고 키운 덕도
모르고 배신하며 또한
유산 문제 때문에
자식간에 다툼이 있으면
어떡하느냐는 걱정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아버지
저희들도 이젠 인생에
대하여 책임 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인생을
후회 없이 열심히 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저희들은 하나님께
부모님께 또한 사회를
통하여 받기만 하고
이만큼 컷고 교육받고
자식 낳아 가정을 꾸려
왔으며 우리의 권리만
찾았지 의무는 하지 못했습니다.
이세상 많은 노인들이
친자식 며느리가
없어서 양노원에
길거리에 버려집니까?
자식들의
유산문제는 이 사회의
것이지 자식들의 것이
아니니까 어려서부터
교육을 시키고 사회에
환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을 믿고 손자로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아버지께서 늘 하시는
말씀 자식 3명에
손자는 2명이니까
손해본
인생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제 손자가 3명이
되었으니까 소원을
푸셨네요
처음
며칠간은 새 손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으시더니
1달 가량 손자에게
정성을 쏟으시고
지금은 막둥이 손자를
무척 사랑하신다. 어머니
아버지 고맙습니다.
입양을 하겠다는데
주변사람은
우리
부부가 입양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생각은
우리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비슷하게 부정적이었다. 우리 한국인은
행복의 기준을 또한
무슨 일을 결정 할 때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생각하며
주변사람들이 의견과
시선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나의
주관적인 결정 행복의
기준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입양이
좋은 일인 줄은 알지만
그 어려운 일을 사서 고생하느냐?
아이를 키울
능력이 있으면 고아원을
설립하지 아니면 그 비용으로
불우이웃 돕기를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입양후의
잘못되고 어려운
일들만 피력하면 서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부모님께서
걱정하셨던 일들을
예견하면서 세상을
얼마든지 즐기면서
여유 있게 살수 있을
텐데 남이 알아주지
않을 일을 왜 하느냐?
신앙인으로서
성직자와 교우들에게도
의견을 제시했을 때
그들 또한 일반인과
똑같은 말을 하는데는
조금 실망도 되고 마음이
흔들리기고 했지만
이일은 신앙인의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
제자로서 반드시 해야된다고
생각 했다 국내입양은
종교인이 먼저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
대학원
동기 모임에서 입양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을
때 정말 오랜만에
격려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입양에
대한 생각을 했지만
부부간 의견 불일치로
이행하지 못했는데
너무나 좋은 일이고
우리 기성세대가
반드시 해야할 일이다며
용기를 복돋아 주었다.
보통사람은
생각하지도 않은 일을
한다며 적극 후원자가
되겠다는 격려의 말
한마디는 우리
부부에게 많은 힘이
되었다.
입양에 대한
우리 부부의 생각은
20여년
동안의
연애기간과
결혼생활을 통하여
우리 부부의 입양에 대하여는
자연스럽게 합의를 본
셈이다. 젊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우리가
인생을 책임질 나이가
되면 입양을 해야겠다는
의견을 교환했고 다른
사람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하여 뜻을
피력하여 왔다.
나의
아내가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것은 모든
일들을 정열적이고
적극적으로 처리하고
입양에 대해서는
나보다도 더
열성적이었던 것은 남편으로서도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지금까지 앞만
보켜 공부하고 아이들
키우고 우리집안의
울타리 안에만 신경
쓰고 최선은 다하는
삶이었다. 이젠
받기만 하고 우리의
권리만 찾았던 삶에서
남에게 되돌려 주는
삶을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된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은상이에 대한
누나와 형의 마음가짐은
고1인
누나 중2인 형은
우리 부부처럼 준비된
마음 상태가 아닌
가운데 아주 어린 동생이
생겼으니 많은 혼란이
있었다.
하나님
뜻 안에서 모든 일에
최선은 다하자는 우리
집 가훈대로 착하고
바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나밖에 모르는
어린 철부지에
불과하다. 엄마의
몸을 통해서만 동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100일이
갓넘은 동생을 갑자기
얻게 되자 당황하면서도
너무나 좋아하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우리는
같이 약속을 했다. 너희
둘은 아버지가 결혼을
시킬 테니까 은상이
장가 갈 때 너희들은 40대가
되니까 책임을 지라고
또한 결혼을 할 상대자를
고를 때 입양을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택하라고
나보다는 남을 배려 할
줄 아는 심성을
기르도록 하자고 다짐했다.
요즈음 큰 아이
둘이 부쩍 성숙하고
의젓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은상이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고 기저귀 갈아주고
우유 먹이고 같이 놀아주면서
많이 성장하는 것 같다.
입양을 하게된
동기는
우리
나라가 수십 년 전부터
해외입양의 제1위
국이라는 언론보도를
접하고 나서 너무도
가슴 아팠던 대학시절
그때 처음 하나님을
알기 시작한 나로서는
입양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그리고 오랜
신앙생활을 하면서
말만 앞세우고 실천이
없는 생활 속에서 과연
지금 내가 사는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인가? 나 혼자
편하고 영달을 위하여
신앙의 너울을 쓰고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인가? 기성교회에서의
실천이 없는 교회 세
확장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고 진작 해야 될
일들은 뒤로 미루어지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못하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스웨덴으로
입양을 간 한국여자에
대한 영화 수잔브링크
아리랑을 관람하고
안타까움과 죄책감에
우리부부는 무거운
눈물을 흘리며 할 말을
잊었다. 우리의
자식인데 먼 타국에서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우리
어른들은 그런 사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내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너무도 무관심 무책임에
가슴 아파했다.
우리
주변에는 소외된 아픈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들을 희생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눈물과 정성이
우리사회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지탱하는 버팀목인데
이들을 위한 관심과
국가의 지원이 절실하다.
우리부부가
입양을 하게 된 것은
우리 형편상 제일 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20대
초반부터
직장관계로
타향살이를 한지 20년
그 동안 자기개발을
위하여 무던히도 쉬지
않고 노력했던 시간들
대학과 대학원 졸업 8년간
공부를 하여 합격한 건축사
시험 30대 젊음을
고스란히 내 자신만을
위하여 투자했던
순간들 어두운 골방에서
1주일간 휴가를
얻어 공부하며 죽음을
각오하고 공부하라는
아내의 말을 곱씹으며
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이 건축사 시험이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쓰여지도록
하시고 그 동안 마음속에만
간직했던 당신과의
약속 입양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시험이
끝나고 그냥 흘러버린
시간이 2년이
지나고 있었다. 부부가
직장생활을 하느라
시간이 없고 마냥
바쁘며 입양절차도
모르고 막상 실행한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여
차일피일 미루고 있을
때 하나님 식의
방법으로 너무도 극적으로
은상이를 우리 집의
천사로 보내주셨다.
형의 무릎으로
태어난 은상
97년
초순부터
집안에
우환이 그치지 않고
찾아 왔다. 아내의
2번에 걸친 병과
사고로 입원 사경을
헤맬 때 그냥 지켜만
보고 아무 대책 없었던
무능한 남편 아들의
입원 그리고 사소한
일들까지 우리가족을
괴롭히고 있었다. 정말
생각조차도 하기 싫은
신앙생활의 한순간
소용돌이 하루하루의
삶이 나락으로 쉬지
않고 추락하고 있었다.
97년
3월 어느
날 사무실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들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 급하게 병원으로
오기바람! 아득하고
너무도 어두운 현실
앞에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고 뿌연
안개만 보일 뿐 기도의
문도 닫고 있는 지금 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재상이는 교통사고로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왼쪽다리와 얼굴을
크게 다침 이로 인하여
아내는 직장을 그만
두고 병간호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늦게
아내로부터 급하게
전화가 왔다. 고향
후배가 서울에서
급하게 상의 할 일이
있어서 오라는 소식 ! 깊은
밤 조그만 방에서 누워
있는 어린 생명을
대면하게 되었다. 후배는
의미 있는 봉사활동을
하기 위하여 1개월
된 갓난아이를
위탁하여 엄마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내일이면
미국 양부모와 면담을
한 후 미국으로
가게된다는 현실 앞에
너무도 가슴 아파
불현듯 우리 부부가
생각나서 급하게
연락했노라고.....
너무도
갑자기 닥친 현실 앞에
아내와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너무도
짧은 만남과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 의지가
아닌 하나님 뜻대로
우리 부부가 입양
하겠다고 결정했다. 재상이의
왼쪽 무릎은 흉하고
크게 상처가 아물고
있었지만 그 형의 무릎
흉터를 통하여 은상이는
그렇게 위대한 탄생을
하고 있었다.
첫만남 그
느낌 그 표현
은상이를
처음 본 그 느낌을
표현하자면 그는
아기토끼의 형상을 한
아주 조그만 천사였다.
3킬로그램 정도의
몸무게 하얀 피부
유난히 토끼처럼 생긴
쫑긋한 귀 정말
그에게도 생명이 있을까
하는 작은 숨소리로
자고 있는 그 모습은
경외 스럽기까지 했다
너무도 귀엽고 작은
손과 발 조그마한
얼굴에 눈. 코. 입
등이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를
안았을 때 고개도
가누지 못하는 가녀린
생명체에서 내 자식이
되리라는 느낌을 가질
수 없고 두려움과 책임감
에 심장이 심하게 뛰고
있는 자신만 느낄 수
있었다.
입양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되는데
일단
미국인과의 입양절차를
취소하고 대한 사회 복지회를
통하여 입양절차를
밟아 나갔다. 먼저
부부가 합동으로
입양신청서를 작성
제출하는 것으로 시작
일정을 정하여 부부가
별도로 면담을 가졌으며
상담자는 입양을 하여
책임을 지고 성공할 수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질문하였으며
일시적인 감정으로
입양을 결정한 것이
아닌지도 재차 확인했다.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고 올바른
사고방식을 소유하고
있는지 잘못하면 한
어린 생명이 2번
버림받지 않도록 심사를
심도 있게 하는 것
같았다. 특히
성장하면서 어떤
경로로든 입양사실을
알고 방황하고
어려움에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 할 것인지를
집중적으로 물어
보았다.
난
어려서부터 본인에게
입양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많은 대화를 통하여
사회 복지 시설 등을
방문하여 같이 봉사하면서
마음을 키워가고 건실하게
성장시키면서 기회가
되면 진실을 얘기해주겠다. 고 답변하고
2시간 가량의
면담을 마쳤다. 아내도
같은 질문에 나와 비슷하게
답변을 하였다고 한다.
부부의 마음이
하나됨을 느낄 수 있었다.
1차
의 면담
과정을 거쳐 입양
적격자로 판정 받고
여러 가지 증빙서류를
제출하였다. 주민등록등본(호적등본),
건강진단서 등을
제출하고 15일 후
우리가정을 방문 가정형편과
두 아이의 면담과정도
거쳤다. 우리는
입양할 아이를 정해놓고
추진했기 때문에
아기와의 면담과정은
생략하였으며 한달 반정도의
기간이 경과하여
은상이를 우리 아들로
데려 올 수 있었는데
마지막 어려운 관문이
남아 있었다.
아기를
데려 올 때 복지회에 2백만
원이 넘는 금액을 납부하여
야만 하였다. 우리
가정도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정
형편이 조금 더 어려운
사람은 입양을 하고
싶어도 못할 경우가
있겠구나 생각되었으며
이런 재정은 정부에서
부담을 해 주어야 될 것
같다. 복지회에서도
운영비와 아기가
입양부모와
만나기까지 사회시설로
가기 전까지의
양육비등으로 지출
해야 하기 때문이겠지만
이렇게 큰 금액을
입양부모에게 짐을
지운다는 것은 잘못 된
것 같고 시정해야 할 것
같다. 외국으로
입양을 보낼 때에도
양부모에게 같은
부담이 갈 것인데 그
이유로 한국인이 아기
수출을 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 것 같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은상이는
드디어 97. 11. 26 일 밤
우리가족의 일원으로
강보에 싸여 당당하게
유씨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탄생을 한
것이다. 입양을
위하여 수고해주신
선생님과 복지회에
감사드린다. 특히
은상이를 우리 아들로
탄생 할 수 있도록
연결의 다리가 되어준
후배 부부에게 너무도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며 은상이의
이모 이모부로 연을 맺었으니
은상이를 많이 사랑 해
줄 것이다.
아기와 주위환경과의
전쟁 그리고 그 전쟁을
즐기면서
우리부부의
큰 두 아이는 할머니가
키워 주셨기 때문에
아기 양육하는 일이 별일이아니
라고 생각했다. 부부가
직장생활 때문에
할머니 등에 업혀 병원
가고 우유 먹고 기저귀
갈아주고 잠도
할머니와 자고
우리부부는 너무도
편했던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은 자식 키우기도
어려우셨을텐데 손자
손녀까지 5명을
키우셨으니 우리
부부는 자식으로 너무
염치가 없었던 것 같다.
부모님께서 더
건강하시고 오래 오래
사셔서 자식 손자의
효도를 받았으면
좋겠다.
은상이의
우유, 장난감, 기저귀,
속옷, 겉옷.
양말등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유아용
물건들을 구입할 때
생소하여 당황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는 것 같아
얼굴을 붉혔던 일들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한
어린 생명을 양육하는
것이 실로 전쟁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족
울타리 안쪽 만을
위하여 안이함에 젖어
있던 우리 부부는
아기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아내는
직장에 복귀하지 않고 1~2년
아기를 양육하기로
했다.
하루에
6번 정도의 우유
먹이기. 수시로
기저귀 확인 갈아주기.
아플 때 병원 가기
칭얼거릴 때 안아주기.
누나가 아기 때
쓰던 15년 된
플라스틱 목욕통에서
목욕시키기. 사타구니등
분 발라주기 자지 않을
때 눈 맞춰 주기. 잠잘
때 이불 덮어주기. 외출할
때 준비하기 모든
생활이 아기 위주로
바뀌어 우리 부부는
새로운 생활을 다시
시작하였다.
아내는
직장도 쉬면서 화장도
할 수 없고. 본인
몸매를 위한 투자시간도
없애고. 제때
식사도 못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와의 전쟁을 하기
시작했고 남편인 나는
퇴근후 출근 할 때까지의
시간을 분담하여 아기
양육하는데 힘을 합쳤다.
또한 나는 좋아하던
테니스도 중단하고. 퇴근
후 동료들과의
저녁식사도 줄이고. 자주
가던 영화관도 끊고. 준비하던
박사과정도 잠시 접어
둔 채 우리 부부는
우리들 자신을 위한
모든 일들을 전부 뒤로
미루고 아기를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 큰
아이 둘도 제일을 스스로
찾아 하면서 동생을
무척 사랑하며 새로운
환경에 잘 순응하여
가고 있다.
이런
아기와의 전쟁은 다
예상했던 바라 힘은 들었지만
견딜만 했고 아직은
아기에게 적응이 다
되지 않았지만 더 큰
전쟁은 우리
주변환경에 있었다. 어머
어째 저 어린 핏덩이를
무엇 하러 데려와
생고생을 하지 가슴이
다 떨리네. 입양한
아들이 대부분 재산
문제 때문에 나중에 큰
분란이 있을 거야. 성장하여
입양 사실을 알고
삐뚤어져 부모에게
은공도 모르고 행패를
부리면 어쩔 거야. 아기가
예쁘지도 않으면서
남을 의식해서 가식적으로
예뻐하는 것 아니야? 진짜
이뻐? 이러한
말들을 들어야 했던
것은 전부 아내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다 생각 했던 일이지만
무척 힘들어 했다.
그렇지만
이런 말들은 우리
부부를 위하고 걱정하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라는 잘 알고 있다.
정말 우리가 살아가면서
편하면 얼마나 편하고
힘들면 얼마나 힘들
것인가를 반문하면서
우리 주위에 힘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그들을
생각해서라도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책임한 사치에
불과한 거야 하면서
우리 부부는 서로를
격려 하면서 최선의
노력을 했다.
정말
우리 은상이가 아파서
밤새 끙끙 앓으면서도
큰 소리로 울지 않아
더욱 안타깝고 늦은
밤에 병원 응급실을
다녀오길 여러 번
우리가 신경을 덜 써서
그렇지 않은 가라는
생각으로 밤잠을 설쳤다.
아이는 아프면서
면역이 생기고 튼튼하게
성장한다고 하지만
우리 은상이 만큼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쟁을
치르면서 또한 그
전쟁을 즐기면서
시간은 지나고 이제
은상이는 우리가 낳은
자식으로 또한 사랑스런
친동생으로 완벽한 한
가족으로 자리잡고
있다. 은상이의
울음소리. 칭얼거림.
몸짓. 눈빛
하나만 보아도
은상이의 상태 원하는
것을 다 알수 있으니...
은상이 천사는
우리가족에게 엄청난
큰 선물을
가정적으로
신앙적으로 엄청난
시련 속에서 형의
무릎을 통하여 탄생한
막내 은상이는
우리들에게 너무도 큰
선물을 안겨 주었다. 은상이를
위한 조금의 수고는
그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멈추었던
우리의 기도를 찾아주고.
상할 대로 상한
우리의 마음을 아물게
해주고. 각자의
생활로 바빠 흩어졌던
가족을 천사를 중심으로
다시 모으고. 단절되었던
대화를 풀어주고
큰아이 둘에게
따뜻하고 남을 배려 할
줄 아는 심성을 찾아
주고. 부부간의
금슬이 좋고
우리부부에게 더욱
젊음을 제공해주는
어마어마한 선물들을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가져다주고 있다.
인생의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은상이는 우리 집에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다.
우리부부는 은상
이에게 어떤 울타리가
될 것인지
우리
은상이는 우리부부의
셋째아이면서 둘째
아들이다. 당당하게
우리부부의 호적에
올라 있고 우리 집안의
한 일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부부는
은상이에게 어떤 울타리가
될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큰아이 둘처럼
똑 같이 키우겠다. 잘
못하면 매를 들고 잘하면
칭찬하고 동일한 교육기회와
재능을 따라 적극적인
지원 여느 부모가 하는
그 마음 그 자세 그 만큼
은상이를 사랑 할
것이다.
특히
은상이가 입양되었다는
사실 앞에 당당할수
있는 한국의 사나이로
키울 것이다. 그
은상이를 키우는 것은
우리가 아니고
하나님이다. 단지
우리 부부는 은상이의
성장을 도와주고 모든
결과와 열매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결하시니까 최선만
다하면 된다. 가훈
하나님 뜻 안에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자.
입양에 대한
우리 부부의 생각과
바라는 것은
우리는
6.25를 거쳐 경제발전을
제1의 목표로
정말 정신없이 달려온
민족이다.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눈부신 경제발전
이면에는 그늘진 곳에서
신음소리 조차 크게
내지 못하고 고통받는
버려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먹을
것이 없어 자식을
버리고 더 환경이 좋은
외국으로 입양을
보내야 했던 가슴 저린
우리의 어른들 그
어른들의 뼈를 깍는
노력으로 우리 나라도
이젠 선진국에 들어서는
길목에 서있지 않은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유아 수출국 1위라는
오명도 같이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우린
다시 한번 생각 해 볼
때이다. 나만
잘하고 1등하고
경쟁에서 이기고 돈
많이 벌어 출세하는
것이 지상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가정교육과
사회풍토 그런 심성의
소유자들이 우리
나라를 짊어지고
나간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이젠
우리 나라도 버려진
아이들. 고아원에서
집단 보육하는
아이들이 없도록
책임을 질 수 있는 가정이
자연스럽게 생겨야
되겠다. 유아
수출국 1위라는
오명을 벗지 않고서는
선진국이라는 말은 별
의미가 없다. 특히
사랑을 외치는
종교단체 지도자들이
나서야 할 때다. 말로만의
사랑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 한 아이
입양하기 운동이 실현될
때 이 문제는 쉽게 해결
될 것이다. 가정에서의
도덕성 회복과 사회의
도덕성 회복에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다. 황폐한
우리의 사회를 아주
윤택하게 하여 줄
테니까. 그 외의
버려진 아이들 노인들
그 외의 소외된 자들을
외면하고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가 어려울 것 같다.
정부의
입양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대책 책임 있는
어른들의 실천 언론의
지속적인 홍보 등을
통하여 우리 모두
한국인의 도덕성
회복을 위하여 힘을
합쳐야 되겠다. 이
일들은 분명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테니까...
우린 은상이와
이렇게 살아 간다.
아내는
1년 3개월
동안 은상이를 키우는데
최선을 다하고 다시
직장에 복귀했다. 은상이가
엄마! 아빠! 하고
소리치며 품속으로
대책 없이 덮석 안 길 때
그 기쁨 그 희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한
생명의 어버이가 되어
준다는 사실에...
오늘도
부산하게 은상이와
같이 출근 준비를 한다.
목욕시키고. 옷
갈아 입히고 . 우유
챙기고 기저귀 가방
챙겨 은상이는 놀이방으로
아내와 나는 직장으로
큰아이들은 학교로
은상이의 빠이 빠이를
뒤로한채........
1999. 4. 22
은상이
아빠
유
영
봉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