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훈이 이야기

김 덕 림(입양부모, 홀트강원아동상담소 위탁모)
정리 : 이 현 주(홀트아동복지회 홍보과장)


상훈이의 행복한 모습 (웬쪽),
아빠와
, 그리고 엄마와 위탁아동과 함께

상훈이의 위탁가정 생활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엄마곰, 아빠곰,애기곰…
상훈이가 처음 집에 오고 사흘동안 가족 누구에게도 말한마디 하지 않고 혼자 발코니를 서성거리며 이 노래만 입속으로 나직하게 부르곤 했다. 그러다가 형과 누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형과 누나가 학교에 가고나면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던 상훈이가 말문이 터진 것은 집에 온 지 일주일이 되던 날이었다.

그날은 홀트사무실에 들러 소장님과 함께 상훈이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에 갔던 날이다. 혈액검사를 하느라 주사바늘을 가까이 가져가자 상훈이는 막무가내로 뻗대고 울었다. 곁에서 간호사, 소장님과 함께 팔다리를 붙들어 보기도 했지만 결국 그날은 검사를 하지 못했다. 얼굴이 시뻘개지고 목에 핏줄이 도드라지게 울던 상훈이는 내목을 끌어안고 '엄마' '엄마'를 부르며 품속으로 파고 들었다. 나도 상훈이를 꼭 껴안으며 함께 울 수밖에 없었다. 상훈이는 그렇게 힘겹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상훈이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누나 와

위탁부모 시작은...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살았던 나는 군인인 남편을 만나 1983년에 결혼했고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전기도 수도도 없는 강원도 깊은 곳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딸 우영이(고2)와 아들 정이(중1)를 낳아 기르면서 한편으론 이웃 주부들과 푸성귀도 가꾸고 때론 돼지며 닭을 치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1994년 춘천으로 이사를 했다. 워낙 아이를 좋아해서 많이 낳고 싶기도 했던 나는 같은 아파트에서 위탁모로 활동하는 분을 만나게 되면서 1995년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남편과 나는 5년동안 위탁양육을 하고 그 후에는 입양을 하자고약속했다.

상훈이는 27번째 만난 아이
상훈이는 우리가 위탁양육을 한 후 27번째 만난 아이였다. 위탁가정에 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갓난아기였는데 1994년생인 상훈이는 그때 4살이었다. 그 전에도 우리가 좀 큰 아이를 맡았던 경험이 있어서 상훈이를 우리에게 맡겼던 것이다. 상훈이를 데리러 홀트사무실에 갔던 날 만난 생모는 서른살 가량의 미혼모였다. 생부와 사귀다가 사고로 생부를 잃었고 혼자 상훈이를 낳아 키워보려고 무척 노력했지만 더 이상 키울 수가 없어 홀트를 찾아 상담을 했고 그날 아이를 데려왔던 것이다. 생모는 과자 사오겠다는 말로 작별인사를 대신하고 상훈이와 헤어졌다. 사무실을 나와 택시타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상훈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한바탕 전쟁이었다.

입양 결정
그렇게 어렵사리 마음을 열기 시작한 상훈이가 새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가던 어느 날 홀트에서 연락이 왔다. 상훈이는 아무래도 입양가정을 찾기가 어려워 머지않아 시설로 보내야 할 것 같다는 얘기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생모와 살면서도 주로 남의 손에서 컸던 상훈이가 이제 생모와도 헤어지고 겨우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나 싶었는데 또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니. 그 어린 것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상처가 클 것 같아 가슴이 미어졌다. 도저히 보낼 수가 없었던 남편과 나는 5년후의 입양계획을 앞당기기로 했다. 두 아이들도 대찬성이었. 그렇지 않아도 아들 정이는 동생을 갖고싶어 했고 상훈이는 오는 그날부터 형하고만 자겠다고 해서 둘은 꼭 붙어 지내던 터였다. 상훈이를 계속 우리집에서 위탁양육하면서 입양에 필요한 상담과 절차를 진행했다. 남편의 월급으로 빠듯한 생활이었지만 상훈이에게 더 필요한 건 풍족한 물질보다 살부비며 함께 살아갈 가족의 정이라고 생각했다.

개구쟁이 상훈이
이제 상훈이는 7살이 되었고 말못할 개구쟁이이다. 운동신경이 뛰어나 축구며 달리기 같은 운동이라면 또래 누구보다 잘한다. 특히 아빠랑 노는 걸 너무 좋아한다. 하루도 성한 날 없이 어딘가 부딪히고 멍들기 일쑤다. 하지만 상훈이는 '곰 세 마리' 노래를 잊은 지 오래이고 발버둥치며 울어야 할 서러움도 없다. 두 아들은 서로 어느 한쪽이라도 없으면 잠도 못 잘 정도이고 우리집은 날마다 아이들이 빚어내는 갖가지 사건과 웃음으로 요란하다. 지난 설에는 아이들끼리 서울 외가에서 며칠을 지내다 왔다. 친척들도 상훈이가 우리 아들이라는 사실을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4살에 우리 식구가 되었으니 상훈이에게 생모의 기억이 남아있을 수도 있고 주변에서도 다 아는 터라 자연스럽게 공개입양이 된 셈이다.

부모의 바램
나도 위탁모를 다시 시작했다. 상훈이가 성장해가면서 혹 입양사실에 대해 갈등하거나 고민하게 될 때 우리 가정에서 아기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고 또 상훈이도 유치원에 다니면서 조금씩 시간적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아기들이 좋은 부모를 만날 때까지 한 명이라도 더 내 품에서 키우고 싶기도 하다.

상훈이를 키우며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새로 배우게 되었고 우리 가정에 상훈이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 이 다음에 우리가 자식들에게 물려줄 물질적 유산은 별로 없을 지라도 신앙만큼은 꼭 물려주고 싶다. 바르게 살수 있는 삶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가정에서 자라는 또다상훈이 들도 하루빨리 입양부모를 만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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