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입양 이야기

: Susan Pak (Fresno, California)
(199611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입양)


캘리포니아 타호 호수에서 행복하게 
자연을 즐기는 가정

(쪽에서: 아빠 존, 사라, 엄마 수잔)

초기의 꿈
내가 대학에 있을 때 나는 내 인생을 모두 상세히 계획했다. 5년 내에 경력을 쌓고, 졸업을 하고, 25살에 결혼을 하고 30살에 첫 아이를 낳는 것이다. 나는 1년 늦게 결혼하였지만 남은 인생을 함께 보낼 바로 그 사람, 존 (John) 을 만났기에 아무렇지도 않았다.  집을 마련하고 시작한 사업이 자리를 잡게된 2년 후에 우리는 가족을 위한 모든 준비가 되었다.

우리의 시련
우리가 1년 반 동안 노력을 했지만 아이를 갖지 못하자 우리는 걱정하게 되었고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우리의 주치의를 만나보기로 결정하였다. 의사를 만나본결과 우리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매우 실망하였다. 가족구성원과 친구들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안됐구나." "아마도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아기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 "또는 "우리가 너희를 위해 아기를 가질게 그리고 너희들이 입양을 하렴." 물론 아무도 우리에게 일부러 상처를 줄려고 그렇게 말을 한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어떤 조언도 우리의 슬픔을 감소시켜주지는 못했다.

입양결정
내 남편 그 때 너무나 상심하였기에 내가 뭔가 우리가 할 일을 결정해야한다고 느꼈다.  남편 내가 무슨 결정을 하던 따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입양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느꼈다. 나는 한국에서 비밀리에 입양하기를 원했, 그리고 한국에 입양할 수 있는 아이들이 많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나는 한국아이를 입양한 백인 가족을 만난 적이 있었고 또 친구 중에는 그녀의 다섯 형제자매와 닮은 입양된 여동생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입양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고 입양에 대해 생각할수록 더욱 마음에 들었다.

입양을 결정한 후 우리는 우리의 계획을 나머지 가족에게 알렸다. 그들의 걱정거리는 당연한 것들이었다. 만약 생모 생부에게 뭔가 잘못(문제)이 있었다면? 만약 그들이 머리가 나쁘거나 호감이 가지 않는다면?  그러나 이런 것들은 곧 우리 팔 안에 아기를 안을 수 있다는 벅차 오르는 흥분감을 감소시키지 못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우리 부모님보다 더 긍정적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어느 날 로스앤젤레스에서 하는 미주복음방송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었다. 거기에서 한인 입양인인 스티브 모리슨 (Stephen C. Morrison) 이라는 사람이 입양에 관한 경험과 홀트국제아동복지회 의 크리스찬 철학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나의 어머니는 그 프로그램에 감동 받았고 즉시 나에게 전화하셔서 연락할수 있는 정보를 주셨다.

이러한 일이 있기전에 우리 친구가 어떤 입양기관을 통해 입양하려고 했다가 그 아내가 임신해서 그 기관을 이용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그 기관에 문의해 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기관은 우리지역을 맡아서 일하는 사회사업가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입양에관한 면접을위해 발랜시아(Valencia) 까지 자동차로 3시간 걸리는 거리를 왔다갔다해야 했다.  그렇지만 홀트국제아동복지회는 우리에게 프레스노(Fresno) 를 담당하는 사회사업가가 있다고 안심시켰고 지원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보내주었다.

남가주 홀트 소풍
우리는 한국에서 입양신청을 하려면 적어도 결혼한지 3년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조건을 듣고 실망했다. 그래서 몇 개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서류를 구비하기 시작했다. 남가주에서 열린 홀트 입양가족 소풍 에 참가했다. 거기에서 스티브 모리슨씨 와  홀트할머니 그리고 몇몇 입양 부모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대부분 3 - 6개월 때 아기들을 입양했고 홀트에서 제공하는 모든 배려에 매우 만족했다. 소풍에서 본 아기들과 좀더 큰 아이들은 너무 예뻤고 그들의 가족과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으며 이런 소풍과 같은 행사를 통해서 그들의 문화의 결속을 유지하는 것 같았다.

시작된 절차
1995 11월 우리의 결혼 3주년을 축하한 후에 우리는 정식으로 신청서류를 보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절차를 밟아야 했는지 몰랐는데 예를 들면 남편 존이 그의 부모님과 미국 시민이 되었을 때 시민증명서를 갖고 있지 않았을 때 그리고 지문을 3번씩이나 찍어야 할 때 등 몇 가지 복잡한 상황이 있었다. 우리는 몇몇 친구에게 신원 조회를 부탁했는데 그들은 우리가 얼마나 급한지 몰라서 그 기관에 서류를 써서 보내는데 많은 시간을 지체했다. 이런 문제들은 우리 힘을 빼놓았지만 우리는 우리 집에 있게 될 한 아이의 생각 때문에 여전히 흥분되었고 아기 방을 꾸미고 유아식사용의자, 유모차, Car Seat등과 같은 아기용품을 구입하는 일을 진척시켰다. 

1996 8월 우리의 신원조회서와 우리의 사랑스런 딸아기의 첫 번째 사진을 받았다. 모든 일이 적시에 일어났다. 바로 그 봉투가 도착했을 때 존의 가족들이 교회 Camp 모임에 가는 도중 우리를 방문했다. 우리는 주름진 작은 얼굴과 꽉 쥔 주먹을 가진 생후 일주일 된 아기 사진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시어머니께서는 존의 신생아 때와 꼭 닮았다고 말씀하셨다. 아기의 이름이 박미화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이름은 그 아기가 우리와 함께 있게 될 것 같이 느껴졌다. 우리는 그녀의 이름을 우리의 조카 크리스틴 이 지은 사라 미셀 (Sara Michelle) 로 결정했다.

소아과 의사인 시누이가 그녀의 입양서류를 보더니 간염이 있는지 조사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했다. 우리는 건강한 아이를 원했기에 입양기관 에게 간염여부를 확인해 줄 것을 요구했고 그것은 사실이 아님을 알았다. 입양기관은 우리에게 그것은 사무원의 잘못이었고 간염예방접종이었다고 말하였고 우리는 확신하기 위해 피검사를 요구했다.  검사결과 그녀는 건강하고 간염은 없다고 확인했다.

전화
몇 개월이 더 지났고 우리는 아기의 여행계획이 걱정되었지만 추수감사절 휴일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우리는 남가주에서 온 우리 가족과 함께 감사한 마음으로 추수감사절을 잘지냈다. 다음 월요일 존이 출근한 후에 우리집에 전화가 울렸다. 마음속에서 바로 이 전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섬광처럼 스쳤다. 그것은   (Phil) 이라는 사회사업가의 전화였고 아기의 모든 여행계획이 확정되었고 그래서 아기가 일주일 이내에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즉시 존과 친구들, 친척들에게 이 흥분된 소식을 전했다. 존의 형제, (Ken), 시누이 정희가 샌프란시스코로 오기로 했다. 우리는 비행기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공항 근처에서 하루 밤을 보냈다. 우리는 주의 깊게 우리 트럭에 car seat를 놓고 사라의 첫 우유병, 귀저기, 우유, 갈아입힐 옷, 작은 장난감등이 들어있는 가방을 챙겼다.

우리 아기와의 첫 만남
나는 공항에서 엘렌 수녀님이 끄는 유모차에 앉아 있는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나의 기쁜 감정을 설명하기 힘들다. 존과 나는 포옹하였고 내 눈은 눈물로 가득 찼다.  유모차에서 조용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6개월 된 아기가 바로 우리아이라니 꿈만 같은 사실임을 깨달았다. 몇 분간의 세관 절차 후에 곧 그 아기가 내 팔에 안겼다. 아기는 울지 않았고 전혀 불안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는 당장에 한 가족이 된 것 같았다. 필요한 서류작업과 면접과 아기를 데려다 준 것에 감사한 뒤, 우리는 한 가족으로 우리 삶을 시작하기 위해 집으로 향했다.

행복한 가정
이제 사라가 우리 삶으로 들어온 지 3년이 지났고 이제 그녀가 없는 삶은 상상하기 힘들다. 물론 처음에는 각자 적응하는데 어려운 시간도 있었다. 약간씩 다르나 새로 부모가 된 사람들이면 다 직면하게 되는 시간이다. 그녀는 지금 아름답고, 귀여운 장난꾸러기 여자아이이며 우리 삶의 소망이다. 그녀는 존과 나뿐만 아니라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가 얼마나 특별한지를 아는 우리 친척들에게 많은 자부심과 기쁨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우리 아기입양에 관련된 여러 말을 듣기도 했는데 어떤 사람은 우리가 아기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그녀가 우리가족이 되었는지 비밀로 해야된다는 등 원하지도 않는 충고를 했으며, 또 어떤 때는 나쁜 의도는 아니나 가족과 친구들이 그녀의 친부모에 관해 우리에게 물었다. 우리는 부모로서 가지고 있는 신념대로 그녀를 교육할 것이며 딸이 자기가 누구인지 알고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또 고향이 어디인지를 알게 되기를 원한다. 그녀가 과거를 숨기고 부끄러워하는 대신에 우리는 그녀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르치기를 원하며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똑같은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기를 원한다. 우리는 그녀에게 생후 6개월 동안 그녀를 사랑으로 돌봐준 위탁가족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들은 그녀의 생일과 크리스마스에 규칙적으로 선물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그녀에게 "Katie Bo""Tell me again about the night I was born"과 같은 입양에 관한 동화들을 읽어주고있다. 우리는 몇 한국부모와 백인 부모들 즉 입양을 통해 알게 된 다른 가족들과 모이고 서신 왕래한다.

입양계획중인또 다른 아이?
최근 사라는 동생을 원하고 있다. 우리는 다음해에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다.


내동생이 빨리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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